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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동 명랑 할머니 조경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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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을센터 댓글 0건 조회 328회 작성일 20-08-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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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마을지원센터가 2020년 새로운 마을살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마을 구석구석을 탐구했던 지난해에 이어 관내에 유관기관들을 알아보는 THEMA.1 마을공동체가 자란다,  마을을 살아가는 주민공동체의 활약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THEMA2. 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강동의 과거에서 미래를 조망해 보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까지 세 가지 테마로 기획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강동사랑으로 이끌  시리즈 '강동을 살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 마을 어르신이 살아온 강동 이야기 



#15_ "어머니가 점지한 선물 같은 동네에요"   

                       

           나무 사랑 앞장서 온 명일동 조경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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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하고 경계가 없었다. 말 끝나고 깔깔 웃는 모습, 막 환갑을 지났음에도 투명하고 맑은 얼굴, 처음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대하는 태도.... 딱 15세 사춘기 소녀였다. 오래된 가구와 사람체취 물씬 풍기는 물건, 꼭 필요한 살림이 자리를 지키는 정갈한 집안풍경이 이 소녀(?)의 솜씨라니...잠시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타고난 유쾌함과 긍정적인 힘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분위기를 압도했다. 명일동의 숲과 나무가 너무 좋고 그 사랑이 갈수록 더하다는 조경자 씨(61). "이리 와서 여기 좀 내려다보세요. 기가 막히죠? 이 길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 말도 못 해요."

강동구의 대부분 지역, 특히 오래된 곳일수록 자연지형대로 동네가 형성된 반면 명일동은 계획에 따라 구역에 맞춰 마을을 조성한 곳이다. 그래서 도로들이 반듯하고 교통과 편의시설이 한데 모여있으며 아파트가 많다. 원래 있던 자연 숲을 마을 안으로 조화롭게 끌어들여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 유난히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그이 집에서 내려다 본 명일동의 길과 숲은 초록색 바다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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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정말 좋네요. 숲 위에 지은 집처럼 보입니다. 명일동과 어떻게 연이 닿았나요?

▶2002년 8월에 잠실에서 이사 왔으니까 이십 년이 조금 안됐네요. 시어머니 때문에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동네에 들어오게 됐어요. 난소암으로 많이 아팠던 어머니를 공기 좋은 곳에서 치료하려고 숲이 우거진 동네를 찾다가 한밤중에 집을 보고 뭐에 홀린 듯 바로 계약을 했어요. 이사 오기 두 달 전, 정작 이 집을 누리셔야 할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덕분에 자손들이 덕을 보았죠. 어머니가 가시면서 우리들 잘 살라고 점지해 주신 집이라 생각해요.

▷어머니 때문에 살게 된 명일동이지만 살기에 어떤가요?

▶녹지랑 나무가 많아서인지 벌써 기운이 달라요. 저번 동네는 이래저래 삭막했는데 여기는 사람, 환경 모두 푸근합니다. 처음 만나도, 어딜 둘러봐도 서먹하지 않아요. 13초만 걸어가면 전철역이랑 버스정류장이 있고 대형마트부터 병원, 도서관, 아트센터, 학교 등 편의시설이 주변 가까이에 있어요. 무엇보다 서로 위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좋아요. 아파트지만 한 통로 34가구 서로 인사하며 지내고 우리 집은 동네 사랑방이에요. 시간들 나면 함께 모여 맛있는 것도 해먹고 이야기도 하며 놀아요. 마음들이 잘 맞으니 할 이야기는 끊이질 않네요.(하하)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코로나 때문에 다니기도 쉽지 않은데...

▶명일동에 오자마자 발을 들인 새마을부녀회 활동이랑 통장 일을 하면서 서울시립강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일주일에 2~3번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봉사는 큰 즐거움과 보람을 줍니다. 식사 배식, 프로그램 보조, 청소 등 뭐든 시키는 대로 다하는 잡부예요(웃음). 우리 아이들도 틈틈이 함께 합니다. 나름 열심히 해서 상도 받고 봉사인증시간도 꽤 많이 갖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바쁜 일이 줄어서 요즘은 외손녀를 보는데 힘은 좀 들어도 참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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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다들 자연에 의지하게 되는데 나무 사랑이 특히 남다르네요.

▶명일동이랑 인연을 맺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기서 남은 삶을 마무리하려는 이유는 이 집과 주변 나무 때문이에요.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명일동은 아프신 시어머니 치료에 도움을 얻고자 찾아든 곳입니다. 지금도 좋지만 20년 전의 명일동은 훨씬 고즈넉하고 조용하고 다정한 동네였어요. 동네를 둘러싼 녹색 숲과 나무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재작년인가? 집 근처 숲길을 밀고 광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주민들이 나서서 해결한 일이 있어요. 수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모두 베어질 판이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구청과 협의가 잘 돼서 나무도 지키고 더 예쁜 숲 광장을 얻게 됐어요.

▷시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무슨 사연이?

▶시어머니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64세에 병을 얻어 엄청 아프게 투병하다 이 좋은 집에서 한번 살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시집살이, 남편살이를 너무 힘겹게 해서요. 제가 24살에 시집왔을 때, 시동생 5명에 시할머니까지 계셨어요. 손자며느리가 있는데도 얼마나 맵게 시집살이를 시키는지 술 한잔 들어가면 늘 우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시할머니 돌아가시고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몹쓸 병에 걸려서... 아휴, 또 눈물 나네. 시아버지는 한마디로 풍운아에 세상 제일 멋쟁이였어요. 중년에 할리 데이비슨인가 하는 오토바이를 몰았다고 하면.... 알겠지요? 아무튼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 하고 싶은 일은 다하고 살았으니까. 그 옛날 파일럿 출신에 어디서든 기죽고는 못 사는 양반이었으니 어머니는 그 뒷바라지하느라 식당을 운영하며 고생고생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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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가 사는 집에 선뜻 시집갈 만큼 남편이 좋았나요?

▶오빠 셋에 막내 늦둥이 고명딸로 춘천에서 태어나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형제들 모두 일찍 철이 났어요. 먹고살아야 했기에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요. 독학으로 주산을 공부하고 큰 버스회사 경리로 들어가서 야무지게 일했어요. 상사가 잘 봤는지 중매를 섰는데 남편이 된 김기민(64) 씨였어요. 말이 중매지 교통안전진흥공단에 근무하던 남편이 일 때문에 회사에 왔다가 저를 보고 반한 거지요. 아무것도 없는 대가족에, 일거리가 지천인 집안 맏며느리 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렸지만 '결혼은 사람보고 하는 거'라는 상사의 권유와 일을 무서워하지 않는 나를 믿고 결혼을 했어요. 남편은 학교도 스스로 마치고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며 자수성가한 사람이어서 말할 수 없이 성실해요. 딸 하나, 아들 하나에 손주 넷을 두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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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고와서 편하게 사셨구나 싶었는데 실상은 인생역전 대하소설 주인공이었군요.

▶아휴, 한 번이니까 잘 할 수 있었지요. 다음 생에는 절대... (웃음). 남편이랑 함께 힘을 모아 서울 성수동에 우리 집을 마련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남편 월급으로 4대가 함께 살려니 너무 힘이 들어서 근처 강가에 나가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일 년에 제사 6번에 4대 살림하며 시동생들 시집 장가보내고 애들 키우고 시어머니 병환 수발에 혼자 남은 시아버지 돌봐드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환갑이 지났네요. 남편이 IMF 때 명퇴를 한 후 자동차 정비를 배워 성수동에 공장을 열었는데 지금까지 그냥저냥 되고 있어요. 퇴직금 다 까먹고 어려워진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기름옷 입고 밑바닥부터 성실하게 시작, 꽤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빚 갚고 어머니 치료비 쓰고 나니 딱 먹고 살 만큼 남더라구요. 돈 아낀다고 커트랑 파마도 내가 하고 옷도 리폼해서 입고 그렇게 알뜰하게 살았는데....


▷자신의 삶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힘들게 했지만 시아버지께도 감사드려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까달스러운 아버님 덕분에 슬기롭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님 비유를 맞추며 단련이 됐는지 포용하지 못할 사람이 없더라구요. 태생이 순하고 약간 푼수끼가 있어서(웃음) 웬만한 일은 유머로 넘기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기쁘게 밑져라,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내 입장을 내세우기 보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듣고 공감해 주니 주변과도 무난히 잘 지냅니다. 내 삶은 현재 농사를 지은 후 결실을 거두는 단계예요. 이제는 다 이해하고 특별히 어려운 일도 없지만 있어도 이겨낼 수 있어요. 아무리 힘든 일도 견디고 기다리면 다 지나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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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올 때와 지금 명일동이 많이 다른가요?
▶길과 나무는 그대로예요. 아니 나무들은 훨씬 무성해져 더 좋아졌네요. 지금 강동아트센터 자리에 무허가 판잣집 십여 채가 자리 잡아서 어수선했던 생각이 나요. 한영고 앞거리엔 대형 트럭들이 노상 주차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이마트 건너 분수대 광장을 만든 후 주변에 있던 아름드리 잣나무 이십여 그루가 모두 죽어버렸는데 주민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한 공사였지요. 여의도 공원이나 뚝섬 서울 숲,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이 전부 숲으로 바뀌면서 훨씬 좋아지고 사람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됐잖아요? 나무가 없으면 우리도 살 수가 없어요. 개발을 하더라도 명일동 아니 강동구의 숲과 나무를 지키며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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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꼭 하고싶은 일이나 소원이 있다면?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 시할머니 모시고 산 사연이 KBS '아침마당'에 소개된 적이 있어요. 평생 힘들게 사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제가 보냈는데 당첨이 돼서 일주일 넘게 촬영했어요. 시부모님 결혼식도 성대하게 다시 해드리고 가족사진도 찍고 온 식구가 행복했지요. 즐거워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요즘도 웨딩앨범 보며 그리워합니다. 조금만 더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소원은 없고 남편이랑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애들도 듬직하고 야무진 배우자들 얻어 독립했고, 우리 먹을 만큼 돈은 벌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어요. 돈이 그렇더라구요. 많이 번다고 내 것이 아니에요. 가끔 욱하는 고약함이 있지만 그래도 99점을 주고 싶은 남편이랑 참 열심히 살았어요.

힘들어도 인생은 꼭 한 번 살아볼 만한 재미와 보람이 있다고 강조하는 조경자 씨. 그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다른 듯 같은 듯해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여정은 결국 각자 가야 할 길이다. 기왕 갈 거, 웃으며 재미있게 가면 좋지 않을까!

명일동에는 말간 얼굴만큼 마음이 맑고 숲과 나무를 많이 사랑하는 명랑할머니 조경자 씨가 산다.

<강동마을기록활동가  유  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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